티베트 의학의 역사 by 한의학 문헌연구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2010년 세계 전통의학 연구거점 기반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인도, 티베트, 마야, 인디언 전통의학의 체계 및 현황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중 티베트 의학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본 블로그를 통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1. 티베트 의학의 역사

들어가며

티베트는 본래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고원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티베트는 현재 중국 영토의 일부(시짱(西藏) 자치구)이며 관점에 따라서는 일부가 인도에 포함되기도 한다. 티베트 민족은 스스로를 또는 펜종’(펜족의 나라)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중국에서 투환(吐蕃)’이라고 부르고, 이 말이 북쪽 곤륜산맥 너머의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되어 나가면서 티베트(Tibet)가 되었다고 한다.

티베트 의학은 티베트 고원지역에 살고 있는 티베트 민족에게서 비롯된 의학 체계이다. 티베트 의학은 고대의 중국의학, 그리스의학, 인도의학과 같이 현재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의학의 연원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의학이 다른 고대 의학과 다른 점은 그들에 비해서 훨씬 늦은 7세기경에 그 기초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는 티베트 의학이 고대의 문물교류의 길을 통해서 다른 의학을 받아들여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티베트 고원의 위치와 크기를 잘 보여주는 지도

(출처: http://kekexili.typepad.com/life_on_the_tibetan_plate/2008/11/tibetan-place-names.html)


1. 선사시대 (서기 629년 이전)

지금으로부터 1만여년 전부터 티베트 고원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혈통은 한반도와 비슷한 몽골계통의 티베트 족이며, 티베트어는 언어학적인 분류에 의하면 인도차이나어족(차이나티베트어족) 중에서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한다.

티베트 민족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세 가지 정도의 가설이 있다. 첫째는 신성한 원숭이설화를 기초로 한 독자 민족설이고, 두 번째는 인도 반도의 아리아인이 올라온 것이라는 남방 기원설, 세 번째는 중국 서부의 소수민족인 강족(羌族)이 이동했다는 동방 기원설이다.

선사시대 티베트 역사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뵌교(Bon religion, 本敎)’이다. 이것은 고대 티베트 문명의 중심지에 있는 카일라스(Kailash) 산과 마나스바로바(Manasvarovar) 강을 근거지로 하여 발생된 일종의 토착 종교이다. 다른 고대 종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뵌교에서도 주술사가 치유자의 역할도 담당했다. 치유 과정은 일종의 의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동물의 희생, 악귀를 쫓아내는 행위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치유 방식은 티베트를 포함해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행해졌다.

초기의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티베트에서도 불, 온천수, 양조 기술, 우유 짜기 등의 생존을 위한 방법들을 발견했다. 그 당시에 티베트인들은 온찜질과 냉찜질의 방법을 치료하는데 사용했으며 특히 다른 치료법들 중에서도 뜸법을 발전시켰다. 또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뜨겁게 해서 녹인 버터를 바르고 사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서기 4세기경에는 수유(酥油)즙을 상처난 곳에 발랐고, 혈관을 결찰하여 지혈하였으며, 6세기 때 서장왕통기(西藏王統記)에 따르면 중국에서 의약과 역산술이 이미 전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서진(西晉)시대에 활동했던 왕숙화의 맥경도 이 시기에 티베트를 거쳐 아라비아에까지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2. 통일왕조의 시작 : 송첸감포 왕 시기와 의약의 전래

서기 629년에 낭르쏭잔의 아들 송첸감포(Songtsän Gampo, 617~?)는 찬탕고원의 남쪽 야루·산포 강을 근거지로 하여 각 부족이 항쟁하는 가운데 각 부락을 병합해서 티베트 고원을 통일하였다. 그리하여 노예제도를 갖춘 토번왕조를 건립하였다. 이 제국은 동쪽으로는 당나라, 북쪽은 타림 분지, 서쪽은 파미르 고원, 남쪽은 인도에 이르기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 토번왕조는 관제, 병제, 법률을 제정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해외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외래 문물을 수용하는 데에도 힘썼다. 또한 송첸감포는 외교 방편의 하나로 네팔 국왕의 딸인 티슌공주, 당나라 태종의 딸인 문성공주를 왕비로 맞이한다. 이 두 결혼은 네팔과 중국의 문화를 동시에 흡수하는 결과로 연결되어 불교 뿐 아니라 각국의 의학 지식도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송첸감포의 그림

(출처 : http://www.men-tsee-khang.org/tibmed/tibhistory.htm)

숴난첸찬(索南堅贊)이 편집한 토번왕조세명감(吐藩王朝世系明鑒)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문성공주는 ‘404종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 백 가지, 진단법 다섯 가지, 의료기계 여섯 가지 그리고 의약 관련 서적 4종을 가지고 왔다라고 한다.

문성공주에 의해 들어왔던 의서들은 그 당시 한족 출신의 의승이었던 마하떠와(瑪哈德瓦)와 티베트 출신의 따마꿔샤(達瑪郭夏, Dharma Kosha)가 티베트어로 번역하여 한 질의 의서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관계 문헌인 의학대전(醫學大全)이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크지만 현재 전하고 있지 않다. 문성공주를 통한 중국 의학 도입과 함께 그 후 송첸감포는 중국은 물론 주변 여러 나라에 의사를 파견하여 의학지식을 도입하고 선진기술을 받아들였다. 그 때 인도와 아라비아, 당나라로부터 의사들이 티베트로 왔다. 기록에 따르면 인도와 아라비아 그리고 당나라에서 들어온 의사들의 이름은 빠르따자(巴熱達札), 까레누오(嘎列諾)와 한왕하이띠(韓王海弟)가 있었다. 빠르따자는 신수유의방(新酥油醫方), 까레누오는 두상치료(頭傷治療), 한왕하이띠는 한지염병치료(韓地染病治療)라는 책을 써서 각자 자기 나라의 의학과 의학체계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은 공동으로 종합의서인 두려울 것 없는 무기(無畏的武器)7부를 써서 티베트 왕에게 헌납하였는데, 이는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티베트의 각 지방으로 전파되었다. 이 책은 티베트 의학사에서 의학대전이후 두 번째로 오래된 티베트 의서이나 현재 유실되어 내용은 알 수 없다.

한편 이들 세 의사 중 두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까레누오만이 그곳에 정착하여 시체해부상명도(屍體解剖詳明圖), 전상의치(箭傷醫治)등 수많은 의서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그의 세 아들이 의업을 계승하여 각기 티베트의 아리(阿里), 옥포(玉布) 등의 지역에서 의업을 행하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까레누오는 왕실의 의사가 되어 많은 부귀를 누렸고 자손들은 대를 이어 의업을 행했으며 티베트 의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유톡 윈딴꽁뿌(708-833)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은 티베트 의학과 한의학의 요진법에 대한 비교 고찰의 논문 중 일부를 재가공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이나 출처는 원논문을 참고하세요.(논문 바로가기 ---> http://goo.gl/qL4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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